나는 사람이 죽는 게임이나 영화를 싫어해.
사람이 죽는걸 왜 봐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던 건 중학교 때부터였어. 무서운 게 아니라 '굳이'의 영역. 사람들은 왜 그리 죽고 죽이는 걸 좋아하는 걸까? 어차피 영화든 드라마든 죽이는 사람은 소수고 죽는 사람은 여럿이잖아. 본인은 관람자이기에 소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많은 게임 중에서도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게임은 행맨이었어. 학교 영어시간이나 영어 학원에서 한 번쯤 했을법한 게임인데 해본 적 있어? 문제 출제자가 단어 하나를 생각하면 그 단어에 들어갈만한 스펠링을 찍으면서 맞추는 건데 틀릴 때마다 자살대와 사람의 모습이 한 획씩 그어지는 게임이야. 이거 생각해보면 너무 잔인하지 않아?
고작 단어 하나를 맞히지 못하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는데도 사람이 목매달려 죽어. 이렇게 오버하며 불평을 하는 건 내 특기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콘텐츠와 작품이 많았다는 건 내가 세상을 싫어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가 됐어. 죽이는 방식으로 약육강식 체제를 굳이 유지하는걸 21세기에도 해야 할까? 어째 더 새롭게 죽일 생각만 하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그렇게 많은 재난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며 이름도 없는 시체1부터 시체1000이 넘는 사람들을 죽여놓고는 지금 전염병 하나에 이렇게 다들 맥을 못 추리고 있잖아. 한심해.
나는 죽고 죽이는 게 익숙해지는 환경들이 몸서리치도록 싫었어. 게임을 못해서 '너 때문에 죽었잖아.'라며 질책받았던 말들은 '내가 행맨을 죽였다'는 말로 들렸고 화이트보드와 녹색 칠판에 길쭉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목을 매단 채 죽어있던 행맨은 그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죽인 게 확실했지. 난 그렇게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어.
그렇게 내가 죽인 행맨의 숫자가 늘어나는 게 싫었어. 그런데 다른 게임을 하려고 해도 계속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어. 그만 좀 죽이고 싶었어. 죽이는 게 지루하고 지치고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어. 그렇게 게임에 흥미를 잃었어. 문명6를 다른 게임보다는 재미있게 했는데 주로 도망 다니며 전쟁을 피하거나 국경까지 AI부대가 오면 대부분 게임을 종료했어. 그래서 난 게임을 한 번도 끝까지 해본 적이 없어.
물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게임도 많지. 스도쿠나 테트리스, 스타듀밸리 같은 게임도 있으니까. 근데 이미 죽음이 만연한 게임 환경 자체에 질려서 시도하고 싶지 않더라. 그나마 보드게임은 좋아해. 스플랜더나 우노, 루미큐브 같은 거. 잘 못해도 다 같이 웃으면서 할 수 있잖아.
사람들이 이제 좀 그냥 살았으면 좋겠어. 죽음을 보거나 죽이는 것을 통해 위안을 삼고 삶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보듬고 다른 여성들을 사랑하면서 정말 삶을 긍정해 나갔으면 좋겠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굳이 모르는 가상의 인물들까지 죽여가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어.
나는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싶은데 나를 죽이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아.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런데 나는 이제 좀 삶이란 것에 더 가깝게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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