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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라이트

대전 서점, 밥, 욜라탱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 글도 대전역 2층 카페에서 적고 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1시간 반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큼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해요. 블루투스 키보드를 잘 챙겨 왔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찍 기차역에 도착해서 글을 적어볼까 봐요.

 

이제 주말에도 눈이 9시면 떠져요. 토요일의 대전은 조금 흐린 듯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아 오늘도 맑겠구나' 하며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다 대전 엑스포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대전의 한빛탑이라고 원뿔에 튜브를 끼워 넣은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데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전망대를 좋아해서 여행 가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면 꼭 가는 편입니다.

 

한빛탑

 

그런데 공원에 들어가는 다른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줄이 쳐져있고 그나마 열려있던 입구로 들어갔더니 운영을 안 한다고 적혀있었어요. 대전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서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다는 게 여기서도 느껴졌어요. 뜨거운 햇빛을 뚫고 어떻게 왔는데! 하며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발을 돌려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이나 가보자 하며 버스를 타러 갔어요.

 

 

서점은 2층으로 되어 있어 책을 구경하기도 책을 읽고 가기도 편한 분위기의 서점이었어요. 새로운 길을 가려는 친구들에게 항상 선물하는 최영미 시인의 '다시 오지 않는 것들'시집을 사고 엽서에 편지도 적었는데 막상 친구랑 즐겁게 떠들다 급하게 택시를 잡고 숙소로 가게 돼서 친구에게 선물을 주진 못했어요. 이민경 작가님의 탈코르셋 책도 이때 사서 몇 페이지 읽다 나왔습니다.

 

알로하녹

 

이 날은 친구가 저를 이끌어서 다녔어요. 알로하녹은 한옥 카페인데 대전에 개인 카페 붐을 시작하게 한 곳이래요. 비싼 감은 있지만 커피나 에이드, 케이크 다 나쁘지 않았던 곳입니다. 친구랑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요새 고민은 뭔지 하는 이야기를 해나갔는데 확실히 중고등학교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둘 다 성인이 된 걸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카라멜은 대전에서 유명한 식당인데 뇨끼의 버섯이 정말 맛있었어요.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느끼한 감자는 별로였습니다. 알리오 올리오는 파스타면이 촉촉하고 쫄깃쫄깃해서 좋았어요. 사람들에게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던 곳이었습니다. 여기도 사장이 남자인 것 같아 '왜 식당에 여자들이 앉아 있고 돈은 남자가 버는 걸까'하는 생각에 잠깐 젖었습니다.

 

그리고는 성심당에 갔는데 대전 와보신 분이면 알겠지만 대전에는 성심당이 많아요. 저는 처음 와서 정말 놀랐는데 성심당, 성심당 케익부띠끄, 옛맛솜씨.. 거기에 성심당에서 운영하는 식당... 성심당이 대기업인 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사다 달라고 한 키다리 트위스트와 앙버터를 사고 제가 먹고 싶었던 순수 마들렌을 샀어요. 친구가 다른 사람 선물하기도 좋다고 추천해줬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바게트 샌드위치도 샀어요. 빵이 건조하지 않고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었어요.

 

성심당에서 나와 욜라탱고에 또 갔어요. 전날 샹그리아 1L를 샀는데 이 날은 500ml를 사러 친구와 같이 들렸어요. 사장님에게 어제 1리터 사갔는데 너무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고 하니 나갈 때 샹그리아처럼 달고 시원한 여름을 보내라는 인사를 받았어요. 그 말로 하루 전체가 낭만으로 가득 차올랐어요.

 

욜라탱고에서 샹그리아를 사고 저는 친구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샹그리아는 어쩜 이름도 달달하고 시원한 이름일까요. 스페인어로는 그렇지 못한 걸 알지만 발음부터 달달한 향이 나는 것 같아요. 샹그리아를 껴안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샹그리아를 마실 생각을 하니 히죽히죽 웃음이 났어요.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내려가고 엑스포다리를 다시 보러 갔어요. 불 켜진 엑스포다리는 정말 멋졌습니다. 그리고 전날 했던 다짐을 또 한 번 했어요. 다시 와야겠다 대전. 개인적으로 바다보다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것도 외지인이니 할 수 있는 감상이겠죠?

 

대전 엑스포 다리
몇개 집어먹은 3천원짜리 회와 샹그리아

 

어제처럼 엑스포 다리를 보며 샹그리아를 마시는데 전날과는 달리 더워진 날씨에 모기들이 몰려들어 이마에 한방, 새끼손가락에 2방을 물려 20분 정도만 엑스포다리를 보다 왔어요. 숙소 근처 마트에 들렸는데 1인분 회를 3천원에 타임세일하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샀어요. 3천원에 회라니! 원가 주고는 사지 않을 회!

 

민경 작가님의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지만 왜인지 글이 끌리지 않아 부채감이 조금 더 쌓였어요. 빨리 읽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과 글을 충분히 들이쉬어서 느낄 수 없는데 읽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이 아직도 싸워요. 이러다 메일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변명을 해봅니다.

 

그리고 어제 미국 이모의 코시사를 읽었어요. 이모!

 

롸이팅비언들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데 다른 글들은 아직 읽기가 싫어요. 끌리지 않아서 손이 닿지 않게 돼요. 비언들이 남겨준 말에 위안을 삼기로 했지만 여전히 초조함이나 불안함은 떨칠 수 없나 봅니다.

 

모두 샹그리아처럼 달고 시원한 여름 보내길 바랄게요.

 

2020.06.28. 일요일

 

대전역 2층 카페 구석진 곳에서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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