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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라이트

품행제로의 아침


밝은 멜로디에 삶에 대한 고민과 회의가 담겨있는 가사의 노래인 안예은님의 품행제로. 다들 들어보셨나요?

 

저는 안예은님 노래를 전부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품행제로 노래를 좋아합니다. 회사에 지각을 한다든가 하루 빼먹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겠지만 이 노래에 담겨있는 '뭐 어때'하는 포부가 좋아요.

 

그리고 품행제로 가사 속 주인공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5분만 '같이'있자고 하거든요. 노곤노곤한 아침에 여자 친구의 손가락을 톡톡 건드리면서 평일이 왔음을 한탄하고, 하지도 않을 지각과 땡땡이 이야기를 하던 때가 생각나 들을 때마다 따뜻하고 두근거려요.

 

난 정말 모르겠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어떨 땐 알 것 같다가도

이게 아니었나 할 때가 많아

배운 대로 살기도 내 멋대로 살기도

모든 것이 오답 같아서

 

저는 이런 말을 아침에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주로 투정이지만요. 자꾸 언니(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언니 자취방에서의 추억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언니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너무 창피할 텐데!

 

주말에 언니 자취방에서 자고 월요일에 같이 출근을 했던 때가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언니랑 나는 왜 회사에 갈까' '왜 인간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이게 맞는 길인 걸까' '오늘 쉴까?' 하고 투정을 부렸어요. 언니는 그때마다 '어쩔 수 없지, 그만 일어나. 지금 출근 안 하면 잘린다는 건 확실해'하면서 제 팔을 끌어당기며 일으켜줬던 게 생각나요.

 

하지도 않을 지각과 땡땡이, 퇴사를 말하는 게 아침에 헤어지기 싫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었는데 언니가 '그래, 오늘 가지 말까?' 하면 제가 '그래도 가야지..' 하면서 몸을 일으켰어요. 

 

딱 5분만 같이 있자

다들 지쳐있잖아 누가 잡아먹으러

오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누워봐

 

딱 10분만 같이 있자

우리 좀 쉬어가자 아무런 생각 없이

하나하나 각자의 리듬이 있으니

 

그래도 언니는 제 5분만, 10분만 하는 요청엔 잘 응해줬어요. 워낙 둘이 일찍 일어나서 시간도 여유가 있었고 아침에 좁은 싱글 배드 이불속에서 서로의 살이 포근하게 겹쳐지는 일, 마주 보고 누워 손을 잡았던 일, 서로 같은 샴푸 향이 나던 일, 동네에 나무가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짹짹하는 새소리가 들리던 일.. 그런 일들이 다 좋았어요. 언니와 그렇게 누워있던 아침 5분, 10분에는 모든 감각들이 열려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네 인생은 끝없는 숙제들을

선생도 없이 해 나가고

정답이 없는 오답노트를

닳고 닳을 때까지 쓰는 것일까

 

코시사를 읽고 품행제로의 후반부를 듣고선 '우리 얘기구나!' 했어요. 우리는 끝없이 여성 간 사랑에 대해 사유하고 실천해가야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몫이기도 하잖아요. 이민경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사랑은 춤과도 같아서 다음 스텝을 밟아봐야 알 수 있는 거라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무엇이 오답인지 알지만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답이 아닐 때도 많고. 그럼에도 정답을 알아가기 위해 지나간 여성들과의 관계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규정짓기를 잠시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긴 여성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요. 그리고 저에게도 앞으로 어떤 새로운 언어들이 붙어올지 제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요.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디로 흘러갈지.

 

그래도 언젠가 바다에서 다같이 만나게 될 거라 믿어요.

 

그때 바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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