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서사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서로를 화장시켜주는 장면들. 하나쯤 그려지시죠? 톰보이를 보고도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으면서도 왜 화장을 해주는 걸까, 왜 굳이 립스틱일까 생각했는데 이민경 작가님 GV에서 '화장을 해줄 때는 입술을 마음껏 쳐다봐도 되잖아요'라는 말에 아! 싶으면서도 다시 차갑게 식어서 굳이?라는 말이 계속 머물렀어요. 실제로 화장을 많이 해주었나요? 이 질문은 꼭 과거형으로 묻고 싶어요.
그렇게 꼬인 생각이 돌고 돌고 머물다 가고 다시 오는 도중에 화장의 의미가 저에겐 '손톱 잘라주기'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저는 제 손톱도 잘 못 깎는데 관심이 있는 친구와 언니 손톱은 그렇게 한번 깎아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던 게 생각이 나요.
네일에 관심 있냐는 질문에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내 손톱 깎을 때랑은 다르잖아'라는 짧은 대답으로 무마하는데 목소리가 떨려서 다들 제가 좋아한다는 걸 눈치챘던 것 같아요. 남의 손톱은 깎아본 적이 거의 없으니 손톱 하나 깎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상대방도 제가 서투니까 손톱이 어떻게 깎이나 들여다보느라 같이 얼굴을 들이밀고. 그러다 문득 심장 소리가 너무 커지면 '좋아해'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어요. 물 쏟을 때를 예상하지 못하듯 제 고백도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심장이 뛰다 못해 손도 떨려서 손톱이 제 코로 튄 적도 있는데 그때 그 친구의 손을 잡고 어이없다며 웃었던 기억도 나요. 언제나 제 사랑은 이렇게 뚝딱이고 어설프고 웃겨요.
좋아하는걸 잘 숨기지 못하는데 손톱을 깎아주다가 언젠가 친구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손톱을 깎는데 누가 그렇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집중해서 깎냐면서 말이에요. 빨개진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게 느껴지고 피가 차갑게 식으면서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고 식은땀에 절여진 등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몸을 뒤로 젖히며 얼굴을 감싸면서 맞다고,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도'라는 말을 들었어요.
나도라는 말이 한국어로 들리지 않고 nado나 など 는 아닐까 순간 고민하고 한국어인걸 깨닫고 믿기지 않고 잘 못 들었을까 봐 '정말?' '응'이라는 질문과 대답을 몇 번이나 주고받다가 참다 못한 친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손톱깎이를 빼앗고는 '나머지 손톱은 내가 자를게. 이렇게 검지 손가락만 짧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라고 했어요. 창피하면서도 '으악 어떡해!'라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리곤 괜히 장난치고 싶어서 '왜 검지 손가락만 짧으면 이상하게 봐?'하고 히히 웃었는데 친구가 '몰라?' 하고 물어서 '알아' 하고 다시 히히 웃었어요.
생각해보면
손톱 깎아줄까?
이 말을 할 때 저는 이미 고백을 했던 것 같아요.
'레즈라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음을 토하는 것 (0) | 2020.06.20 |
---|---|
이젠 정말 끝내야 해 (0) | 2020.06.18 |
난춘은 나에게 야한 노랜데? (3) | 2020.06.15 |
나름의 답 (0) | 2020.05.29 |
식빵을 사자 (0) | 202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