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당신에게,
최근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당신의 글이 보이지 않아 내심 섭섭해지곤 해요. 트위터도 잘 들어가지 않아 당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글로 접할 수밖에 없는 저는 당신의 글로만 당신을 접할 수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50명이 넘는 여성들과 글을 쓰는데 당신의 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당신의 글은 자주 올라오지 않아 더 눈이 가요. 그 몇 편 올라오지 않는 글의 다음 편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건강하신가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진 않으세요? 당신이 사는 곳에 산책로는 있나요? 산책로엔 어떤 꽃이 피고 있나요? 당신의 동네엔 어떤 꽃이 피고 있나요?
당신이 쓰는 글은 음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기도, 친한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기도, 가부장제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해 왔고,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고, 앞으로도 여성들과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글들이 있었죠. 당신은 당신이 쓴 글을 기억하시나요? 전 기억해요. 최근에는 글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그전엔 모든 비언들의 글에 댓글을 달지 못했어도 읽긴 했거든요. 당신이 보여준 새로운 다정함을 저는 잊지 못해요. 그래서 당신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누군가에 닿는 글을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레즈라이트에 들어올 때의 당신의 바람을 기억하고 있나요? 무슨 글이든 규칙적으로 어떻게든 써보고 싶다던 마음이요. 물론 글을 쓰다 보면 잘 쓰고 싶죠. 그런데 저는 당신이 그런 벽을 혼자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당신의 글을 평가하지 않아요. 그저 깊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새로운 사랑을 알게되는 것처럼요. 같이 하는 동료들이 어떤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당신은 읽어내잖아요.
당신 몸 안의 불꽃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뜨거워요. 당신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겠죠. 그런데 저는 알아요. 작가가 아닌 여성들의 글을 꽤나 봐왔거든요. 여성들은 글에 진심을 담지 않았다고, 열심히 쓰지 않았다고 아닌 척을 해도 그 안에 열정을 담지 않는다는 걸 까먹어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전 당신이 쓰는 글이라면 다 좋거든요.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요. 당신도 알듯이 여성들의, 특히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여기에서 당신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는 기다리는 거 하난 잘 하거든요. 저는 당신이 올 때까지 계속 여기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 편하게 들려주세요. 저는, 우리는 당신이 온다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당신을 맞이할 겁니다. 꽃이 피고 더위가 세상을 물들이고 낙엽의 바삭거리는 소리가 세상을 울리고 따뜻한 목도리를 두를 때면 언제든 당신을 맞이할 거예요.
이 편지를 다시 쓰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또 쓰게 된다면 그땐 당신도 함께 같이 편지를 쓰고 있으면 좋겠어요.
2020.09.05
나오
초님이 만든 TRPG에 함께 참여해 글을 썼습니다! 노란색 배경은 제가 뽑은 잉크이고, 초록색은 수식어 판정에 성공해 붙인 수식어입니다. 가독성 판정에서 보노보노가 걸려서 가독성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보노보노 배경에 무지개 그라데이션 글씨는 아무리 해도 보이질 않아 더 지독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에도 TRPG 꼭 참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