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코시사를 읽으면서 딴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를 써볼까 해. 나는 시덥지 않은 글을 좋아하거든.
나는 왜 카메라를 샀을까?
2년 전인가 친구에게 중고로 보급형 DSLR을 샀어. 많은 곳을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많은 장면들을 담았어. 무거워서 자주 찍으러 다니진 못하겠더라. 친구가 나한테 카메라를 팔 때 나는 분명 잘 못 쓸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사고 싶다고 했어. 나는 포토샵도 못해서 무보정으로만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도 말이야. 라이트룸 쉽다고 하는데 언제나 귀찮아서 미루기만 했어. 사실 지금까지도 귀찮아서 기본 이미지 설정에서 자르기랑 밝기 조절만 해.
그럼에도 나는 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싶어 했을까?
어이없게도 카메라를 산 가장 큰 이유는 밖에 나가고 싶어서였어. 나는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 집 베란다 문 밖으로 반쯤 보이는 창문에 나무들이 살랑거리고 풍성한 잎들을 가르고 들어온 햇빛이 뜨거웠다 진해지고 차가워지고 사라지는 걸 보고 있으면 행복해. 그런데 문득 안에만 매몰되니까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카메라가 생각이 나는 거야. 그래서 카메라를 무턱대고 샀어.
혼자 밖에 나갈 이유를 만들어내기엔 출사만 한 이유가 없더라. 혼자만의 약속이라도 밖에 나갈 강력한 동기가 돼. 그땐 정처없이 하루종일 돌아다니거나 집안에만 박혀있거나였거든.
카메라를 드니까 건물 하나를 찍으려고 해도 자동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고, 내가 원하는 색감과 대비가 나올 때까지 셔터를 누르면서 맞춰가는 게 화도 나고 속도 터지지만 좋았어. 아직도 그 피곤한 감각이 좋아. 그리고 그렇게 건져낸 우연이 좋아.
걷고 걷다가 피곤에 절여져 녹초가 되면 그제서야 밖에라도 나와야 했던 상황이었던걸 깨달아. 언제나 감정은 깨닫는 게 늦더라고.
사진에 대해 깊이는 없지만 사진 이야길 좋아하던 우리는 매번 '곧 죽어도 사람은 찍기 싫다'며 박수치며 크게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웃긴 얘기는 아니네. 머쓱하다. 쓸 때만 해도 강력한 펀치라인 어쩌고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우리끼리 재밌었으면 됐다고 생각해. 그렇지?
카메라를 왜 샀는지 쓰다보니 사진 이야기로 빠졌고 그러다 보니 너 생각이 났어. 짧은 글을 오래도 썼네.
'레즈라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해 (0) | 2020.04.26 |
---|---|
제 글은 앞으로 어디를 향하게 될까요? (0) | 2020.04.22 |
잘지내? (0) | 2020.04.20 |
안녕? (0) | 2020.04.17 |
YES가 YESBIAN이 되는 책 -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0) | 2020.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