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여러분,
결국 또 안녕을 쓰게 되었습니다.
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깜깜한 저녁, 울프소셜클럽에서 저는 이 글을 썼습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온 줄 알았는데 놓고 왔다는 걸 깨닫고 손으로 포스트잇에 빼곡하게 적었던 글을 머리로 되새기며 글을 쓰고 있어요. 새벽에 글을 옮기다가 포스트잇에 물을 쏟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거든요. 오늘의 글은 포스트잇에 적었던 내용을 풀어내는 글입니다. 하루 일기인데도 또 편지를 쓰고 있네요. 편지에 중독된 편지비언입니다. 이민경 작가님 책임지세요(?)
어제는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놀러 나갔던 날입니다. 8년 지기 친구를 거의 1년여 만에 봤는데 어제도 본 것같이 익숙했고 언제나 그랬듯 피자를 먹고 카페에 가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랑 원래 저녁에 울프도 가기로 했는데 친구는 일이 많아 먼저 집에 갔어요.
저는 이 친구와 만날 때 매번 피자를 먹어요. 회사에서 점심마다 먹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굴레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게 피자였거든요. 친구도 피자를 좋아해서 이 친구와 만날 때는 어디를 가든 피자를 먹어요. 그래서 서로를 피자 메이트라고 부릅니다.
원래 피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한식이 아니면서 밥이 들어가지 않는 메뉴를 찾다 보니 피자였고 먹다 보니 피자가 더 좋아졌어요. 토핑이 올라가 있는 피자든 페퍼로니만 올라가든 고르곤졸라, 시카고피자만 아니라면 그 어떤 피자도 오케이가 되었습니다. 토마토소스랑 치즈도 뭐든지 적당량이어야 맛있더라구요. 피자 메이트와 다닌 피자집은 매번 가던 곳만 가서 아직 많지 않지만 매번 무슨 피자를 먹을지 기대하게 됩니다. 피자 맛있는 곳 추천해주시면 꼭 가볼게요.
저는 친구들에게 레즈비언인걸 대면으로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어요. 그때도 제가 좋아하는 그 친구에 대한 (생각하고 보니 꽤 오랜 짝사랑이네요) 고민과 걱정들을 친구들과 교환일기처럼 쓰던 블로그에 털어놨어요. 계속 비공개 일기만 쓰다가 용기 내서 공개 포스팅으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터놨어요. 제가 레즈비언인 것 때문에 친구들과 인연을 끊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게 무서웠고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용기만 가득찬 겁쟁이었고 그 글에 댓글은 달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구들이 눌러준 공감 하트에 모든 게 담겨있었다고 생각해요.
정면 돌파하는 게 답일 때가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만난 피자 메이트와도 '걔를 아직도 좋아해? 으휴' '그러게..'라는 말을 주고받을 정도로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레즈비언인 것은 전공이라든가 사는 동네라든가 하는 하나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제가 염려한 것보다 두렵고 큰 것이 아니었더라구요. 피자 메이트는 어제 저를 한심하단 눈빛으로 봤지만 정확해서 뭐라 하진 못했어요. 여러분이 알듯이 저는 구질구질비언이니까요.. 멋진 비언이 되기는 글렀나봅니다.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에 피자메이트에게 김진아 대표님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책도 선물로 주고 피자도 먹고 울프도 다녀오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작년에는 레즈비언데이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올해는 제가 레즈비언인게 당연해진 친구와 같이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제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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